<그리고 산이 울렸다>
좋아하는 작가를 물으면 망설임없이 1순위로 할레드 호세이니를 꼽을만큼 그의 소설을 좋아한다. 간결한 문장으로 전혀 모르는 문화와 배경을 그림처럼 그려내는 능력도 탁월하고, 미국 의사로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뿌리인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향수를 절절하게 녹여낼 줄도 안다.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의 평생 끊어지지 않는 인연을 지니고 살아가는 운명이 내가 동경하는 삶이라 읽을 때마다 완전하게 몰입할 수 있다. 10년동안 단 세작품만 냈다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다.
특히 대학교때 토익공부하기 싫어서 읽기 시작한 <연을 쫓는 아이>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끼고 손을 덜덜 떨면서 순식간에 읽었고, 내가 보았던 어떤 고전보다 강렬한 잔상으로 남아있다. 20대에 읽은 책 중 단연코 최고다. <천개의 찬란한 태양>은 <연을 쫓는 아이>에서 느꼈던 충격은 없었지만 역시나 감동적이고 훌륭했다. 그리고 나온지 몰랐던 그의 신간 <그리고 산이 울렸다>. 반디앤루니스에서 할레드 호세이니의 이름을 보자마자 책을 집어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몇일을 기다리거나, 5분을 투자하여 북셀프에서 몇천원 할인받는건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읽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리고 주말에 규정집을 백번 읽어오라는 팀장님의 으름장은 가볍게 무시한채 오랫만에 제대로 여유를 가지고 찬찬히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산이 울렸다>는 전작들과는 다르게 두 주인공의 비중이 크지 않고 '둘'의 이야기는 소설을 열고 닫는 역할을 한다. 그 외에는 그들과 알게 모르게 얽히는 사람들의 사연이다. 하지만 제목처럼 두 주인공은 다른 등장인물들의 인생에 어떻게든 울림을 준다. 그리고 역시 전작들과는 다르게, 이번엔 두 주인공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3대에 걸친 '서사'로 쓰여졌다. 약간 <백년의 고독>같은 느낌? 나에겐 여전히 <연을 쫓는 아이>가 베스트 오브 베스트지만 ㅎㅎ 다음은 읽으면서 마음에 닿았던 문장들.
사실, 우리는, 우리 모두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넘어 뭔가 특별한 일이 우리에게 일어날 것을 기다리지 않습니까.
"나비, 당신이었어요. 늘 당신이었다고요. 몰랐나요?"
그러나 솔직히 인생을 돌아보면서 내가 어쩌면 사람들이 결혼에서 찾는 것을 이미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걸 깨닫고 있었습니다. 나한테는 편안함과 벗, 그리고 나를 언제나 환영하고 사랑하고 필요로 하는 집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제 압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사랑을 하는 것처럼 불행을 느낀다는 걸 말입니다. 은밀하고 강렬하게, 아무것에도 의존하지 않고서.
그건 사실이다. 티무르는 자신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는 전형적으로 불쾌한 아프간계 미국인처럼 행동했다. 자기가 이곳에 사는 것처럼 전쟁으로 찢긴 도시를 휘저으며, 사람들의 등을 툭툭 치면서 형제자매, 아저씨라고 부른다. 그의 표현대로 자선 주머니라고 칭하는 것에서 거지들에게 돈을 꺼내주는 쇼를 한다. 또한 나이 든 여자들한테 어머니라고 부르고 농담을 던지며 그들이 캠코더에 대고 이야기를 하게 유도한다. 그리고 내내 여기에서 살았던 것처럼 슬픈 표정을 지으며 그들 중 하나인 척한다. 그는 이 사람들이 폭격을 당하고 죽임 당하고 강간당할 때 자신은 새너제이의 헬스클럽에서 흉근과 복근을 키우려고 한 적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행동한다. 위선적이고 혐오스럽다. 아무도 그런 행동의 실체를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이드리스는 그것이 놀랍다.
사람들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말한다. 의미 없는 폭력, 의미 없는 살인. 의미 있는 살인이라면 저지를 수 있다는 것처럼.
이드리스는 소녀의 미소를 보며, 자신이 서른세 살의 나이에도 세계에 대해서, 그것의 야만성과 잔인함과 끝없는 잔혹성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 게 없는지 깨닫는다.
그 아이를 생각하고, 아이의 마지막 날의 괴로움을 생각하고, 그런 걸 보면서도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생각하면, 내가 했던 모든 것과 내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잠들기 전에 했던 작은 맹세들처럼, 그리고 깨어날 때는 이미 잊어버리고 마는 작은 맹세들처럼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나는 오랜 세월이 흘러 성형외과 의사로 실습을 시작할 때, 그날 부엌에서 탈리아에게 티노스를 떠나 기숙학교에 들어가라고 할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세상은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지 않으며, 살과 뼈에 가려진 희망과 꿈과 슬픔에 대해서는 조금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걸 배우게 되었다. 그것은 그처럼 단순하고 불합리하고 잔인했다. 나의 환자들은 이 사실을 알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그들의 골상의 좌우대칭, 눈 사이의 간격, 턱의 길이, 코끝의 이상적인 비전두각에 따라 정해지는지 알았다. 아름다움은 임의로, 어리석게 그냥 주어지는 엄청난 선물이다.
"마르코스, 참 우스운 얘기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거꾸로 간다. 그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에 따라 산다고 생각하지. 그러나 정말로 그들을 끌고 가는 건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지 않는 것이란 말이다."
어떤 현란한 계획이나 상황이나 우연이나 운명, 혹은 그것이 어떤 이름이든, 그것을 통해 우리가, 그러니까 그녀와 내가, 서로를 만나게 될 것을 평생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책은 표지마저 예쁘다. 처음에 <연을 쫓는 아이>를 산게 표지 때문이었으니까 ㅎㅎ 다음 작품은 언제쯤 나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