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
혹자들은 많은 아나운서들이 좋은 집안, 좋은 조건의 남자에게 시집가는 시대에 나이많은 시인과 결혼한 고민정 아나운서를 개념 아나운서로 치켜세우지만 나는 그런 이미지도 상대적인 거라고 생각한다. 부자와 결혼하면 사랑이 아니고, 가난한 사람을 택해야만 사랑인가. 설사 사랑이 아니라 조건만 보고 결혼했을지라도, 그들이 그렇게 살아서 행복하다면 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당장 내 친구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넌 속물이야"라면서 인연을 끊는건 말도 안되는 노릇이고,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른거니까 그런 삶에 공감은 못하더라도 이해는 한다. 나도 아직 심지가 굳지 못해서 그런 사람들을 보면 동경은 아닐지언정 조금이라도 부럽고 주눅드는건 사실이니까. 그래도 역시 나와 같은 가치관을 지니고 내가 바라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응원하고 싶어진다.
내가 중학교 때 정의했던 미래 내 남편될 사람의 조건은 딱 세가지였다.
1. 나를 사랑하는 사람
2. 내가 존경하는 사람
3. 인생을 같은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는 사람
엄청 추상적이지만 십년이 지난 지금도 기본틀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뭔가 좀 더 디테일해지고 추가적으로 바라는게 많아졌지만;;; 몇 번의 연애 실패 끝에 확신한건 난 내가 어려워하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거다. 남자에 대한 존경심은 나이가 많다고,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기는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인품에 경외심이 들 때 자연스럽게 갖게 되더라. 그런 의미에서 고민정 아나운서가 말하는 '존경'은 내가 생각한 '존경'과 거의 일치한다.
존경은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도, 위인전에 나온 사람도 아닌 닮고 싶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저 외모를 닮는 게 아니라 그분의 삶 하나하나를 흠모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분처럼 살기 위해 노력하게 만드는 것 말이다.
열한 살 차이의 남자, 시인이 되기를 꿈꾸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때 내 대답은 내게 처음으로 존경이란 단어를 느끼게 해 준 그를 잃지 말자는 거였다. 돈은 내가 벌 수 있는 거지만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은 다시 만나기 힘들 테니까. 가장 중요한 자산은 바로 사람이니까.
벌써 13년 전의 일이다. 만일 감당할 수 있겠냐는 내 자신의 물음에 아니라고 답했다면 지금 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가슴 아픈 사랑을 추억하며 또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었을 수도 있고, 그 사람을 잊지 못해 지금 껏 혼자 살고 있을 수도 있다. 아나운서의 꿈도 그의 제안으로 꾸기 시작했으니 그 사람과 헤어졌더라면 지금 쯤 적성에 맞지 않는 사무직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육아에만 메달려 살고 있을 수도 있겠다. 그를 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무조건 불행한 삶을 살았을 거라고 단정 짓는 게 아니다. 나름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할 수 있는 건 지금만큼 한 남자의 사랑을 이토록 많이 받을 수 있었을지, 세상에 무서울 것 없는 지금의 강인한 나를 발견할 수 있었을지 답할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지금 이 순간, 참 행복하다. 적어도 지금이 내겐 생애 최고의 순간이다.
그는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누구나 가고 있는 그 길을 따라가는 건 쉽겠지만 그러면 결국 여러 명 중 한사람밖에 되지 않을 거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자신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옳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맞서라고 했다.
"불안해하는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야. 하지만 아나운서가 되고 나서 사람들이 시험 준비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할 거야? '별수 없어요, 돈 많이 준비하세요'라고 할 거야? 당신이 적은 돈을 들이고도 아나운서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돈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없을 거 아니야. 그리고 특별한 사람이 되려면 남들과 다른 힘든 길이라 하더라도 감내해야지.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사람인거야."
"그건 아나운서가 되고 난 다음의 문제잖아요. 일단 난 아나운서가 되고 싶단 말이에요."
"난 당신이 나에게만이라도 특별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중국어로 '믿는다'는 말은 서로 상相자에 믿을 신信자를 쓰는 시앙신相信이다. 즉 믿음이란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마음을 주고받아야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배신을 당하거나 이별을 했을 때 자신을 돌아보기 보다는 상대방을 탓하기에 급급하다. 혹은 모든 탓을 자신에게 돌리며 스스로를 못났다고 하탄한다.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스스로를 패배자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는 사람, 기쁘고 힘들 때 떠올리게 되는 사람,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은 그런 사람으로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 나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도록 그에게 아무 조건 없이 모든 것을 나누어 주었는지, 그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함께 괴로워하며 고통을 나누었는지, 나의 시간을 쪼개 기꺼이 그 사람의 생활 속으로 들어갔는지 돌이켜 보는 일은 적다. 오늘 밤엔 내게 소중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한번 세어 봐야겠다. 닌빈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처럼 셀 수 없이 많으면 참 좋으련만...
나를 위해서라면 별도, 달도 따다 줄 것 같은 이 사람을 다음 생에서도 만나고 싶은 건 그만큼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더 받아 보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부러운건, '다음 생에도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과 사랑하고 있는 것. 대부분의 기혼자가 "다시 태어나도 지금 배우자랑 같이 살겠다는 건 100% 거짓말이야."라고 냉소적으로, 또는 허탈하게 이야기하는 세상에 저렇게 사랑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는 사실이다.
수준높거나 감명깊은 에세이는 아니지만 서로를 아끼며 도란도란 사는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
나도 내 사람의 꿈을 지켜주고 싶다. 또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이 나를 단단히 잡아주면 좋겠다. 그 날이 오긴 하는 것인가....
고아나운서가 학창시절 방명록에 쓰인 필체를 보고 반했다는 조기영 시인의 손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