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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h blah

눈맞추기

아파트 앞마당에서 굴러다니던 고슴도치 한마리를 구출한건 2010년 가을.

정식으로 입양할 생각이 없었기에 이름도 대충 '고슴이'로 지었는데 데리고 산지가 어언 1년 반이다.

문제는 그동안 전혀 친해지지 못했다는 것.

그나마 초반 몇개월간은 친해져보겠다고 대쉬했는데, 우리집에 올 때 이미 한살이 넘었던 녀석은 버림받은 상처때문인지(본인이 탈출했을수도 있지만)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했고, 점점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지금은 매일 저녁 밥주고 2~3주에 한번 목욕시키는게 접촉의 전부일 정도로 거의 관리를 안하는 상태가 되어버려 가족들은 차라리 다시 야생으로 돌려보내라고 난리다. -_-;;

돌이켜보면 고슴이와 눈 맞추기를 포기한게 문제의 근원인듯하다. 

고슴이와 눈을 맞추기 위해선 바닥에 납싹 업드려서, 녀석이 가시를 들고 얼굴을 보이길 기다려야한다.

좋아하는 아몬드로 유인하면 조금 더 수월하다.

그런데 스킨십도 못하고,  애교도 전혀 없고,  상자 안에 넣어둔 양말 속에서 가시를 세운 녀석을 억지로 꺼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지라 끊임없이 구애하여 '내' 고슴도치로 만들기에 지쳐버린 것이다. 

고슴도치 까페에 다른 사람들이 올리는 사진 보면 손안에서도 잘만 놀던데 나는 아직도 목욕한번 시키면 손가락에 멍이 맺힌다. ㅠㅠ

사람도 똑같지 않은가.

몇번 친근하게 말을 걸고 다가가서 반응이 부정적이거나, 없으면 '특이한' 사람으로 단정짓고 아웃사이더로 만들어버리는 사회.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어느 모임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 <자전거 탄 소년>에서 제멋대로인 시릴을 위한 사만다의 아낌없는 노력. 

자신을 가위로 찌른 아이를 다시 받아주는 사랑.

give and take가 아니라 한꺼풀 벗겨도 있는 그대로 순수한 관계.

누군가를 위해 바닥에 엎드려 지속적으로 그 사람의 눈을 바라보는 것.

동경하면서도 나 스스로가 실천하긴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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